2013년의 새해 아침이 밝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간 밤에 꾼 꿈같이 지나가고 이제 새로운 한해를 맞는다.
우리 가족은 생명의삶으로 매일 묵상을 해나간다.
그런데 새해의 첫날 본문이 창세기 1장이라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창조하실 때
말씀으로 명령하시니 모든 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었다"는 말씀이
특별히 마음에 꽂힌다.
이 새로운 한 해 동안
나 개인의 삶에서나
KDMin 프로그램의 모든 사역에서
그리고 하나님의 교회를 섬기는 모든 동역자들의 삶과 사역 가운데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따르고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וַֽיְהִי־כֵֽן
JK/황진기
Watered Garden
Fuller KDMin Program
Tuesday, January 1, 2013
Wednesday, May 18, 2011
이정석 목사님을 기리며(김세윤 박사)
조사: 존경하는 이 정석 목사님을 기리며
김 세윤 (Fuller 신학대학원 한인목회학박사원 담당 부학장 겸 신약학 교수)
하나님께서 그의 종 이 정석 목사님을 이렇게 빨리 불러 가신 것을 인해 가족과 모든 친지들과 더불어 슬픔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정석 박사를 그가 미국 칼빈 신학교에서 공부할 때부터 알게 되었고, 한국에서 목회하는 목사의 모습과 후에 신학교들에서 가르치는 학자와 선생으로서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의 깊은 신앙, 주님과 이웃을 위해 철저히 헌신하는 삶, 진실과 정의를 위한 열정, 리더쉽의 은사 등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는 학문의 은사도 많이 받은 분으로서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를 위해서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오로지 정도로만 정진하여 참으로 실력있는 조직신학자가 되었고, 학생들에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스승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영적으로, 지적으로, 도덕적으로 훌륭하게 갖추어진 신학자가 한국의 타락한 교계와 학계의 상황 속에서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면서, 저는 2000 년 가을에 그를 제가 봉직하는 미국 Fuller 신학대학원에 초빙하여 조직신학 교수로서 석사 과정의 학생들을 가르치며 동시에 한인 목회학 박사원에서 부원장으로서 우리 한국 목사들의 재교육에 힘쓰도록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정석 박사는 Fuller 에서 5년 간의 교수 사역을 마감하고 한국에 귀환하고자 하였습니다. Fuller 의 여러 동료들이 그것을 만류할 때, 그는 한국에 돌아가서 저술과 강의로 한국 교회의 갱신과 일치 운동을 펼칠 꿈을 역설하였습니다. 한국 교회의 신학의 미숙함, 정치적 갈등, 도덕적 타락을 생각할 때 제게는 그 꿈이 너무나 비현실적인 것이어서 여간 걱정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불의와 적당히 타협하며 살지를 못하여 한국 교회의 바로 그런 문제들 때문에 그렇게 고생한 이 정석 박사가 그런 교회를 통합하여 바로 세우고자 하는 비젼을 가지고, 그것을 위해 자신의 안위를 희생하며 헌신하겠다는 선지자적 자세를 가진 것을 존경하면서, 저 자신의 작은 믿음과 헌신을 되돌아보기도 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의 종 이 정석 박사가 한국에 돌아가서 드디어 학자로서, 또 목사로서 주님과 그의 교회를 위해서 그의 필생의 사명을 이루려 할 때, 왜 주께서는 그에게 이 땅 위에서 더 이상 시간을 주시지 않고 불러가셨는가? 인간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헤아릴 수 없어 슬퍼할 수 밖에 없으나, 주 안에서의 모든 희생과 고난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을 이루는데 일조하는 것 (롬 8:28) 을 믿고, 주의 신실한 종 이 정석 박사의 고난의 삶과 희생적인 사역, 그리고 그의 "때이른" 죽음도 하나님 나라 실현을 위해 크게 쓰임받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서로를 위로해야 할 것입니다.
이 박사의 "때이른" 소천이 그의 그런 비젼과 그런 희생적인 삶과 함께 동료들과 후학들에게 자극을 주어, 우리로 하여금 거룩한 제자도의 삶을 살면서 한국 교회의 일치와 갱신에 더욱 힘쓰게 한다면, 우리는 고난의 종 사도 바울이 롬 8:28 에서 설파한 말씀의 진리가 이 주의 신실한 종의 삶과 죽음을 통하여 더욱 환하게 드러난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완성된 하나님 나라에서 이 종을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며 아직도 이 땅에 남아 있는 사모님과 세 자녀들, 그리고 모든 친지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길 간절히 빕니다.
Friday, January 7, 2011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다."
이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론의 핵심 중의 핵심 원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회사에서 이것은 너무나 자주 망각되고 무시되어 왔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제국의 종교로 격상시키고 제국의 위용에 부합하는
건물과 구조를 갖기를 원한 이래 교회는 사람보다 건물에 집착했다.
특히 한국교회에는 "교회성장=교회 건축"이라는 등식 아래
교회당 건축을 가장 중요한 목회적 사명으로 알고
이를 위해 힘쓰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다.
어제와 오늘 신문 기사에서 미주지역의 한 중형교회가
그동안 교회당 매입으로 인한 부채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교회당을 포기하고 이를 계기로 교회의 사역의
중대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 교회는 몇 해 전 인근 야산에 불이 나서 많은 주택을 태우던 그 때도
온 성도들이 힘을 합해 불난리를 겪어내고 교회당을 지켜낸 바 있기에
이번 결정이 더욱 안타깝게 들린다.
그리고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건물에 집착했던 지난 10년에 대한 이 교회 담임목회자의 회심의 고백은
목회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교회 건축이나 큰 교회당 매입을 교회 성장의 주요 방편으로 삼고
목회 지도력의 대부분을 여기에 올인하는 목회자들에게
이번 일이 매우 중대한 경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웅장한 헤롯 성전의 돌들과 건물들을 가리키며 제자들이
감탄하며 자랑할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건물을 자랑한 제자들의 그 자랑을 무색하게 만드셨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 13:2)
물론 이것은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내다보고 하신 말씀이다.
2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세워진 교회당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안에 들어온 사람들,
세상으로 보냄 받아 예수님이 체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다.
목회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이다.
이 단순 명확한 진리를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JK
이것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교회론의 핵심 중의 핵심 원리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교회사에서 이것은 너무나 자주 망각되고 무시되어 왔다.
콘스탄틴이 기독교를 제국의 종교로 격상시키고 제국의 위용에 부합하는
건물과 구조를 갖기를 원한 이래 교회는 사람보다 건물에 집착했다.
특히 한국교회에는 "교회성장=교회 건축"이라는 등식 아래
교회당 건축을 가장 중요한 목회적 사명으로 알고
이를 위해 힘쓰고 있는 목회자들이 많다.
어제와 오늘 신문 기사에서 미주지역의 한 중형교회가
그동안 교회당 매입으로 인한 부채에 시달리다가
마침내 교회당을 포기하고 이를 계기로 교회의 사역의
중대한 방향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한다.
이 교회는 몇 해 전 인근 야산에 불이 나서 많은 주택을 태우던 그 때도
온 성도들이 힘을 합해 불난리를 겪어내고 교회당을 지켜낸 바 있기에
이번 결정이 더욱 안타깝게 들린다.
그리고 교회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건물에 집착했던 지난 10년에 대한 이 교회 담임목회자의 회심의 고백은
목회에 대해 참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교회 건축이나 큰 교회당 매입을 교회 성장의 주요 방편으로 삼고
목회 지도력의 대부분을 여기에 올인하는 목회자들에게
이번 일이 매우 중대한 경종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웅장한 헤롯 성전의 돌들과 건물들을 가리키며 제자들이
감탄하며 자랑할 때 예수님은 그들에게 동조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건물을 자랑한 제자들의 그 자랑을 무색하게 만드셨다.
"네가 이 큰 건물들을 보느냐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막 13:2)
물론 이것은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를 내다보고 하신 말씀이다.
2천년 기독교 역사 가운데 세워진 교회당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자신의 교회를 건물이 아니라 사람으로 보시는 예수님의 관점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다.
예수님의 초대에 응하여 하나님의 은혜로운 통치 안에 들어온 사람들,
세상으로 보냄 받아 예수님이 체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과 행동으로 알리는 사람들,
바로 이 사람들이 예수님이 세우시는 교회다.
목회자들은 바로 이와 같은 예수님의 사역에 동역자로 부름받은 사람이다.
이 단순 명확한 진리를 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JK
Wednesday, November 17, 2010
뿌리가 살아 있으면
오늘 아침 산책 길에 문득 몇 달 전 산불이 나서 나무랑 억쇄를 모두 태워버린 민둥산에 올라보고 싶었다. 경사가 비교적 가파르고 흙이 단단하지 못하여 부스러져 내렸지만 조심조심 산을 올랐다.
그런데 산에서 참 신기한 광경을 보았다. 많은 나무들이 아예 형체조차 없어졌지만 군데 군데 앙상한 가지만 남은 나무들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죽은 것 같은 나무가 사실은 죽지 않고 살아 있었다. 겉으로 보이는 나무 가지는 분명 죽은 것이지만 나무 밑둥을 보니 푸른 가지와 잎이 솟구치고 있었다. 타다 만 가지는 더 이상 수분이나 영양을 받지 못한 죽은 모습이었지만 지면에서 가까운, 아니 지면 속에 뭍혀 있던 부분은 수분과 영양을 여전히 공급받고 있었고, 그 덕분에 싹을 틔우고 푸르른 생명을 발산하고 있었다.
주위를 둘러보니 그런 나무가 한둘이 아니었다. 어떻게 죽은 나무에서 싹이 트는가? 나무들을 바라보며 깨달음이 왔다. 뿌리가 살아 있었구나. 뿌리가 살아 있으면 아직 살아 있는 것이구나. 뿌리의 생명력, 뿌리의 중요성이 새삼 다가 왔다.
요즈음 전세계가 경제위기의 여파로 위축되고 삶이 각박해 지는 것을 본다. 미주의 한인사회나 한인교회 역시 이와 같은 영향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섬기는 교회가 신록이 무성하기보다 거친 화마에 그을린 가지처럼 초라하게 돼 버린 것을 보며 애통해하는 목회자들과 사모들이 한둘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소망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뿌리가 살아 있다면, 그 뿌리의 생명력에 잇대일 수 있다면 여전히 우리에겐 희망이 있다. 오늘 아침에 본 불에 타다 남은 나무들이 이 뿌리의 능력을 보여주는 산증인들이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JK
Wednesday, October 27, 2010
한국교회와 땅밟기
땅밟기 기도는 한국교회에서 성경적이라는 이름 아래 오랫동안 행해져왔던 관행이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취하기 위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성을 일곱 바뀌 돈 것에서 땅밟기의 성경적 근거를 찾는다.
그리고 교회 부지 매입에서 부터 교회 건물 렌트와 전도 의식 고취
단기 선교 등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자주 매우 영적이고 성경적인 방법인양 사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관행의 근저에는 땅밟기 자체가 마술과 같은 능력이 있어
발로 밟는 모든 땅을 차지하게 도와준다는 미신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그리고 저 땅은 사탄의 땅 이 땅은 하나님 땅 이라는
피터 와그너나 찰스 크래프트 식의 능력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서울의 어느 사찰에서 예배인도자 학교 졸업생들이
사찰에 들어가 땅밟기를 하고 심지어 대웅전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린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 온 국민의 비난을 사게 된 일은
영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미신적 신앙이 어떤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지를
아주 웅변적으로 잘 보여준다.
불교 스님들이 기독교의 무지몽매함을 지탄하는 오늘의 이 현실을 어찌하랴?
이번 기회에 성경적 실천이라는 미명하에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기독교를 미신적 종교로 만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JK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취하기 위해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여리고성을 일곱 바뀌 돈 것에서 땅밟기의 성경적 근거를 찾는다.
그리고 교회 부지 매입에서 부터 교회 건물 렌트와 전도 의식 고취
단기 선교 등 여러 가지 경우에 여러 가지 목적을 위해
자주 매우 영적이고 성경적인 방법인양 사용되어 왔다.
이와 같은 관행의 근저에는 땅밟기 자체가 마술과 같은 능력이 있어
발로 밟는 모든 땅을 차지하게 도와준다는 미신적인 믿음이 깔려 있다.
그리고 저 땅은 사탄의 땅 이 땅은 하나님 땅 이라는
피터 와그너나 찰스 크래프트 식의 능력 대결을 염두에 두고 있기도 하다.
최근 서울의 어느 사찰에서 예배인도자 학교 졸업생들이
사찰에 들어가 땅밟기를 하고 심지어 대웅전에서 기도와 예배를 드린 영상이
인터넷에 공개가 되어 온 국민의 비난을 사게 된 일은
영성의 이름으로 포장된 미신적 신앙이 어떤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는 지를
아주 웅변적으로 잘 보여준다.
불교 스님들이 기독교의 무지몽매함을 지탄하는 오늘의 이 현실을 어찌하랴?
이번 기회에 성경적 실천이라는 미명하에 목회자들이 솔선수범(?)하여
기독교를 미신적 종교로 만드는 이런 안타까운 일이 중단되기를 바란다.
JK
Subscribe to:
Posts (Atom)